제가 수녀원 입회해서 아주 꼬맹이 때의 일입니다.

제겐 잊지 못할

짧은 만남, 긴 여운의 만남이 있습니다.

처음 수녀원에 입회하면 아스피랑 지원기라 하는데요.

지원기 시절,

2달 동안 사도직 실습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 회복실 엠마오에서 소임을 했었는데요,

그때 만났던 할머니,

김 스타니슬라오 수녀님을 소개할까 합니다.

수녀원에 입회해서 반평생을

관절염, 류마티스로 아픔을 소임으로 사신 분입니다.

특히 류마티스는 밤새 통증이 심했었는데요,

스타니슬라오 수녀님은 고통을 기도로 승화시키며

살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제게

비뚤배뚤한 글씨가 적힌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제게 건네 주셨습니다.

그 구겨진 종이 한 장이

제겐 두고두고 귀한 선물이 되었지요.

그 수녀님이 직접 쓰신

삶의 버팀목이 되었던 기도시랍니다.

주님의 뜻과 내 뜻

주님의 뜻은 내 생명이요 내 영원한 신앙이외다.

주님, 솔직한 마음으로 나의 소망을 아뢰옵니다.

주님 천리까지 향기가 풍겨나는 난이 되고파요.

아니요, 그대는 민들레꽃이 되려무나.

주님, 저는 고결하고 향기 높은 백합화가 되고파요.

아니요, 그대는 쓴냉이 꽃이 되려무나.

주님, 저는 향기 상쾌한 아름다운 장미꽃이 되고파요.

아니요, 그대는 오랑캐꽃이 되려무나.

주님, 저는 찬바람 불어오는 가을 맑은 하늘에

소쩍새 노래하며 나그네 발길 멈추고 바라보는

감미로운 향기 풍기는 국화꽃이 되고파요.

아니요, 그대는 이 꽃도 저 꽃도 피지 않는

빼뿌쟁이가 되려무나.

주님, 저는 송림 사이로 맑게 흐르는 시냇물이 되고파요.

아니요, 그대는 풀잎 끝에 이슬방울 되려무나.

주님, 저는 비바람을 비웃는 바윗돌이 되고파요.

아니요, 그대는 한줌의 모래가 되려무나.

주님을 사랑하여 남은 저의 생애를 건강한 몸으로

형제들에게 봉사 하고파요.

아니요, 그대는 십자가 그늘아래 포로 된 몸이 되려무나.

아! 진정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뜻은 이도저도 아니요,

허무공이 되려무나.

나는 그대를 위해 허무공이 되었노라.

너 만일 내게 오려면 허무공이 되어야만 내게로 오리라.

김 스타니슬라오 수녀.

네, 주님의 뜻과 내 뜻이 이렇게 다르네요.

너 만일 내게 오려면 허무공이 되어야만 내게로 오리라.

예수님의 삶을 사셨던 스타니슬라오 수녀님.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주님의 뜻과 나의 뜻이 다름을

온전히 받아들이시고

하느님께 순응하며

소리 없는 고뇌와 말없는 사랑으로

고통을 기쁘게 봉헌하셨던 수녀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일그러져가는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평화로움으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나의 갈망, 욕심을

가만히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청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