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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타인의 얼굴
이 름 이중근프란치스코
작성일 2021년 6월 23일 조 회 888
첨부파일 없음
내 용

타인의 얼굴

 

 

혹시 한번이라도 하느님 얼굴을 뵌 분 계신가요?

아니면 뒷모습이래도.. 뒷모습이 아니면

하느님 옷자락이라도 스쳤던 분 혹시 계신가요?

 

설마 성체조배 하는 중

채광창으로 흘러들어온 햇살에

떠다니는 먼지라든가

어느 여름날 신호대기 중 차창에 비친

뭉게구름이 만드는 형상을 갖고

하느님을 봤다고 우기시려는 건 아니겠죠?

 

성경을 보면 구약의 고대인들은

현대인보다 훨씬 하느님을 친밀히 인지했을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막의 장막에서

하느님의 분신을 보고

야곱은 하느님과 씨름까지 했으니

촉각으로도 하느님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얼굴을 보여 달라는 모세에게

하느님은 자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고

귀에 대고 말씀하시며 모세의 눈을 가립니다.

모세의 청각을 마지막으로

하느님은 인간에게서 멀어져 가는 듯 합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뵌 사람이 한 분도 없을 것처럼

또 이런 사람을 한번으로도 마주친 적 없는 분도 안 계실 겁니다.

 

아침 출근길 대형 폐기물 딱지도 붙이지 않고

대로변에 내놓은 업소 소파처럼 널브러져 누워 있는 아저씨

머리맡에는 하얀 구토 물과 베개 대신 구두 한 켤레...

이 아저씨는 무엇을 잊고 싶어 이렇게 퍼마셨을까요?

무엇이 그리 괴로울까요?

하긴 괴로운 사람은 이 아저씨만이 아닙니다.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시청 만남의 광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저씨 담배 한대만 줍 써?”

빗 쫄딱 맞고 다가오는 10대가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머리 피도 안 마른 짜식이 하고, 인상을 찌푸렸을 텐데..

비에 침수된 슬리퍼하며 사흘 굶은 얼굴 하며

담배 한 보루라도 손에 들고 있으면 좋았으련만

양손을 모아 불을 붙여주려는데

담뱃갑을 휘익~ 나꿔 채 달아납니다.

 

벌써 아이는 길 건너

저만치 가버렸습니다.

 

이 아이는 혹시

아침 출근길에 보았던 아저씨 아들은 아닐까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외동아들이 아닐까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 법인데

손 안에 쥔 게 없어 주먹을 자주 내밀었는지도 모릅니다.

 

유태인 출신의 레비나스란 철학자가

[고통스러운 타인의 얼굴에서 무한자의 흔적]을 본다는 얘기를 했답니다.

 

여기서 무한자는 당연히 하느님을 뜻함으로

요즘은 별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하느님이

고통스러운 타인의 얼굴을 빌어

슬그머니 모습을 내민다는 뜻일까요?

 

그래서인지 제가 부자도 아니면서 큰돈도 아닌

돈을 빌리러 온 사람을 그냥 빈 손으로 보낼 때

망연자실하여 기죽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그가 눈에 안 보이는

누군가와 같이 돈을 빌리러 왔던 것처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마태복음 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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