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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0823(목) 문화예술, 영성의 뜨락 - 시인 전종대 바르톨로메오
작성일 2018년 8월 24일 조회 8285
첨부파일 없음
내 용

전종대 바르톨로메오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중학교사

경산문협 지회장을 역임하시고,

현재 경북 문협과 대구 가톨릭 문인협회 회원.

1996<시와 산문> 신인상을 수상

첫 번째 시집 <지렁이가 밟고 간 길은 뜨겁다> (2003)

두 번째 시집 <새는 날아간 만큼 하늘을 품는다> (2017)



지렁이가 밟고(밥꼬) 간 길은 뜨겁다


날씨가 흐려진다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촉촉한 기억

한 삽 푹 떠 뒤집으면

수십 마리의 지렁이들이 꿈틀거리던 거름더미

거대한 함성, 자유다, 살아있음이다.

그 지렁이들처럼 꿈틀거릴 수만 있다면…….


아내는 오늘도 큰놈을 학원 빌딩 속으로 밀어 넣고는

시퍼런 칼날로 고등어대가리를 내려친다

고등어는 꿈틀대지 않는다

분노도, 저항도, 깃발도 없다

편안한 식사시간

9시 뉴스는 부패의 음식을 먹고 썩지 않을 갑옷을 걸치란다

견고한 사상을 키우란다.


창문을 내다본다

묵묵히 어둠을 뚫는 촛불들의 침묵

거름더미 속을 헤집던 지렁이들의 행렬

침묵은 거대한 마그마다

참다운 부패의 행진이다.


나는 기억한다

썩음의 종말에 피어나는 생명의 풀씨를

오직 온몸으로 모든 것을 먹고

부드러운 흙을 내놓는 지렁이는

부패다, 썩음이다, 아니 생명이다, 희망이다

그래서 지렁이는 거미처럼

허공에 집을 짓지 않는 지도 모른다

나비처럼 날개를 키우지 않는지도 모른다.


지렁이가 밟고 간 길은 축축하다

지렁이가 밟고 간 길은 뜨겁다

오직 부패의 입과 관통하는 한반도의 내장과

원시의 배설이 있을 뿐이다.

겨울비가 내린다

기분이 좋아진다

축축한 아내의 자궁에 지렁이를 키우고 싶다

갑자기 지구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지렁이가 밟고 간 길은 뜨겁다’-


이 제목은 시의 제목이기도 한데 사연이 있습니다.


2002년에 경기도 양주 국도에서 당시 중학생이던 효순이 미선이가

미군장갑차에 치어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억나시는지요?

그때 미군 측에서 사과는 했지만 판결에서

가해자 미군병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래서 온 국민이 촛불시위를 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 제가 9시 뉴스를 보다가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그 붉고 파아란 불빛의 행렬이

마치 거름더미를 해치면 꿈틀거리는 지렁이로 보였어요.

마치 수천의 지렁이들이 나아가는 행렬 같았지요.

지렁이는 다름 아닌 우리의 민중들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힘없고 나약한 존재지만 땅을 기름지게 하는 존재, 소중한 존재이죠.

촛불은 지렁이들이 내는 거대한 함성, 자유와 정의를 향한 몸부림,

제게는 살아있음이었죠.

그래서 지렁이가 밟고 간 길은 뜨겁다라고 했습니다.






침묵


예수가 땅바닥에

무엇을 쓰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비가 내렸다

글씨가 지워지고

눈물이 지워지고

길 위의 여자도 지워졌다

돌들이 뚝뚝 떨어져 있었다.


등 굽은 낙타 한 마리가

바람 부는 사막의 능성을 넘고 있었다.



걸레


어느 날 문득 방바닥을 닦으며

너덜너덜해진 너를 쥐어짜며

너도 한 번쯤 몸값이 없는 저울에

마음을 달아보고 싶었던 것일까

하루 종일 내려앉은 먼지와

발바닥에서 사타구니에서 입에서 튀어나온

너덜너덜한 일상의 편린들을

훔치고 닦아주고 핥아주고는

마침내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아무도 모르게 발바닥으로 우는 예수처럼

절뚝거리며

리어카에 폐지를 싣고 노인은 간다.


김 춘수 시인은 나의 하나님이라는 시에서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상식적이지 않고 충격적이지만 신선하지 않습니까?

정말 푸줏간에 걸린 살점처럼 그분은 우리들에게

그 자신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분의 살점을 받아먹고 있지요.

김 춘수 시인은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잘 보신 것 같았습니다.

저도 흉내를 내어 보았습니다.

예수야말로 우리의 방바닥을 닦는 걸레이고

발바닥으로 우는 존재이고 폐지를 싣고 가는 노인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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